1946년 부산광역시 동래구에서 《갯마을》의 작가인 소설가 오영수(吳永壽)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거쳐 1971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였다.
'현실'의 동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1969년 이전부터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가지고 민화·무속화·불화·탈춤·굿 등 한국 전통의 민중문화를 연구하고, 이를
민족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에 전념하였다. 졸업 후에는 2년 동안 경주와 서울에서
벽돌 공장을 경영하면서 몇 점의 테라코타 소품을 제작하고, 1974년에는
상업은행(현 한빛은행) 동대문지점·구의동지점 내외벽의 테라코타 부조를
제작하였다.
이후 서울에 정착해 출판사 《청년사》에서 표지화 및 삽화·엽서 등의 목판화에
열중해 《한국의 민중극》 《독립운동사연구》 《박노해 시집》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등의 서적 표지화를 제작하였다. 특히 1980년대 이후에는 목판화에
전념해 창작 춤판 《강쟁이 다리쟁이》 《도라지꽃》 등의 포스터와 《민족의 노래,
통일의 노래》 출판기념회장 걸개그림을 제작하였고, 현실과 발언 창립전(1980),
새로운 구상화가 11인전(1981), 시대정신전(1984∼1985), 삶의 미술전(1984), 40대
22인전(1986) 등의 전시회를 통해 한국 민중판화·민중예술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1986년 민족미술협의회에서 첫 '오윤 판화전'을 기획해 큰 호응을 얻었고, 이어
부산에서 판화전을 개최하던 중 간경화로 사망하였다. 인간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복잡하지 않고 단순 명쾌하게 표현함으로써 민중판화를 '민족미술 또는
민족문화라는 넓은 영역으로 이끌어 간 예술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주요 작품에 판화 《헐벗은 사람들》(1972), 《기마전》(1974) 외에 말년인
1985년에 제작한 《춘무인 춘무의》 《징》 《북》 《원귀도》 《도깨비》
《칼노래》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