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주는 (느낌과는 다른) 뉘앙스와는 다르게 실제 책의 내용은 많이 다르다. 저자는 "하버드대 이야기 칼럼을 매개로 나는 학자들의 사상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바"라며 "독자 여러분과 이를 공유하고자"한다고 이 책의 의도를 말하고 있다. <하버드 정치경제학>은 <하버드 경제학>에 이은 시리즈 두 번째 이다. 또한 "문제와 시각은 모두 기자로서의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했다고 말한다. 이것이 저자는 장점이라 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단점에 더 가깝다. ('하버드 정치경제학'은 한국 제목이고 원제로는 '하버드 경제학 노트 2'이다.)
이 책은 저자가 하버드대에서 개설한 강의 내용을 '기자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기술한 것이다. 이런 기술이 단점에 가깝다고 말한 이유가 강의를 기자의 시각으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내 이해의 부재일수도 있지만) 각 챕터들이 연결됨이 부드럽지 못하여 이해가 힘든 부분들이 있다. 그러한 점보다도 부럽고 놀라운 점은 이런식의 기술도 책의 소재가 충분히 될 수 있구나. 감탄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는 정리, 기술한 사람이고 원저자 또는 공저자는 각각의 강의를 한 교수가 되어야 하지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고 책을 내었겠지만 책의 내용을 떠나 서울대나 한국의 몇몇 대학에서 이런 식으로 기획한다면 그 책이 출간 가능할까?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그것이 왜 가능한지 알 수 있다. 이 또한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단점에 조금 더 가깝다.
몇 가지 주제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그중에 관심이 가는 대목은 "문화경제학"을 기술한 4장이다. 그리 길지 않은 장이기에 먼저 읽었다. 먼저 문화경제학이라는 용어에 대해 정확히 이해가 필요하여 그것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개념 이해를 위하여 온라인 검색과 책자를 여러번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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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경제학은 계량분석 방법으로 문화가 사람들의 신념과 선호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하는 것이다. (211쪽)
문화경제학은 현미경으로 이들 외부 조건(사람의 신념, 선호 및 제약)을 확대하여 미지의 변수로 간주하고 문화가 어떻게 사람의 신념, 선호 및 제약 조건에 영향을 미치고 경제의 산출물을 낳게 하는지 구체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212쪽)
경제로 문화를 설명한 대표적인 인물은 칼 마르크스이다. 그는 형이상학적인 경제가 형이상학적인 체계를 결정하고, 생산방식이 기본적으로 사회, 정치 생활과 사상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215쪽)
문화경제학은 문화가 경제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소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의 선호, 태도, 신앙이 다르며, 나아가 경제에서의 선택과 그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둔다. (215쪽)
문화경제학(Cultural economics, 文化經濟學)은 기존의 경제학의 재화를 중심으로 하는 이익 창출의 개념을 발전시켜
인간 중심의 경제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순수예술, 공연, 더 나아가 산업적 개념의 콘텐츠산업의 분야에 대한 학제적 논의를
진행하는 응용경제학의 분야이다. (위키백과)
문화경제학이란 넓게 해석하면, '경제'와 '문화' 의 상호관계 및 상호작용을 분석, 고찰하는 학문이다.
문화경제학이란 문화의 가치나 문화의 생성, 발전, 확산에 대한 경제적 연구를 말한다. 예를 들면 음악, 미술, 문학 등의 경제적
가치를 측정하거나 이를 경제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연세대학교 정철현 교수 <문화연구와 문화정책>)
문화
경제학이란 물적 풍요와 마음의 풍요가 상호의존관계에 있음을 인식하여, 문화예술활동과 사회경제활동의 교류를 폭넓은 시야에서
구명하고자하는 경제학의 새로운 분야로서, 문화진흥, 문화지원, 문화정책의 존채방식 등을 경제학의 시각에서 추구하는 학문 (일본
유배각有業閣 경제사전經濟辭典)
순수예술이 시장경쟁에서 실패해 사양산업이 됨에 따라 정부차원에서 재정지원을 통해 이들을 존속시켜야 하는지의 여부가 진지하게
검토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를 위해 문화에 대한 경제적 분석이 필요했다. 문화경제학의 효시가 되는 저술인 보몰과 보웬의
<공연예술:경제적 딜레마(Performing Arts: The Economic Dilemma)>(1966)는 이 문제를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정부지원의 필요성을 제시한 것이었다.
실제 미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예술에
대한 정부지원이 크게 늘어났다. ‘국립예술기금’이 설립됐고 각 지방정부의 예술지원 규모도 상당히 증가했다. 이에 상응해
경제학자들의 문화예술 연구도 증대했다. 1970년대 들어서는 문화경제학회가 만들어지고 학회지가 발간됨으로써 이 분야의 연구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진전되었다. 이후 유럽 호주 아시아 각국에서도 상당한 연구성과가 나오게 됐고 한국에서도 1996년에
문화경제학회가 조직됐다. (문화산업 경제적 파급효과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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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경제학의 효시는 시장경쟁에 실패해 사양산업이 될 공연예술에 대한 정부지원 여부를 경제학적 분석이 필요로 하고 그에 대한 실증적 분석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문화경제학은 그와는 다른 개념의 문화경제학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뒤에 기술되는 내용과 처음에 문화경제학에 대한 설명을 보면 같은 개념이라는데에는 이의가 없다. 자만 2009년에 개설된 강좌에서 "문화경제학은 새로운 분야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분야에서 가장 앞서나가야 한다"고 말한 부분이다. 공연예술에 국한 된 것이긴 하지만 1966년부터 논의가 되어왔고 1970년대에는 문화경제학회가 만들어졌는데 2009년의 강좌에서 새로운 분야라 하는 것과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할 수도 있는 주제"에 알레시나 교수가 노벨상(사실 노벨경제학상이라 불리는 다른 이름의 경제학상을 말하는 것이다)이 수상 가능하다고 말한 부분을 옮겨본다.
한 중년 학자(학부 강좌인데 중년 학자라니 의아스럽다. 이런 부분들이 가끔 보인다.)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한 국가 또는 한 사회가 낮은 신뢰 수준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또 나쁜 균형에서 좋은 균형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알레시나 교수는 매우 좋은 질문이지만 강의계획서에 나온 어떠한 논문이나 참고문헌도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대답을 해줄 수 없다고 대답했다. ... 알레시나 교수는 말했다. "누구든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노벨상을 수상하게 될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책과 조치로 사회를 바꿀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이 문제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 국가 또는 한 지역의 사회자본은 지방 문화의 일부이다. 사회자본이 많든 적든 모두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해석할 때는 내시 균형을 이용한다." 이 설명으로 부터 위의 질문과 답변이 나온 것이다. 경제학의 가장 큰 맹점(?)은 모든 것을 해석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을 바꾸지 않는 균형상태라는 것은 고전경제학에서 말하듯 인간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합리적인간에서 출발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 부분은 확신 할 수 없지만 의구심이 많이 드는 부분이다.)
이에 대한 설명이 있다. "사람은 이성적이고 이기적이며 모두 개인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가정한다면 이 문제는 경제학에서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이 체제는 이미 균형 상태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경제학은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이 상황에서 사회를 개선하도록 도와줄 수 없다. 사회를 바꾸려면 경제학의 틀에서 벗어나 창조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수동적이고 인위적인 존재로 경제학에 속박된다"고 했다.
경제학은 변모한다. 그에 대한 발전 방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초기의 경제학은 인문학의 일부분이었다. 당시 경제학은 사람에 관한 과학이었지만 그 후 경제학이 변천을 거듭하여 사물만 보고 사람은 보지 않는 과학이 되어버렸다. 이 문제점은 너무나 크다. 오늘날 학문이 융합하고 통섭하는 시대에 다시 경제학이 사람과 사람을 주목하는 과학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은 경제학이 인문학의 일부분이라는 점, 즉 사람에 관한 과학이라는 점이다. 변천을 거듭하여 사람을 보지않고 사물만 바라보는 학문이 된 것이 아니라 원래 태생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융합과 통섭의 시대에 경제학이 변모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지 않은) 사람을 배제한 경제학의 한계로 합리적이지 않은 사람을 인정한 결과이다. 경제학이 과학인가? 이점은 동의하기 참으로 힘들다.
이 챕터를 여러번 읽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 책에서 말하는 문화경제학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는 물론 나의
경제학에 대한 이해 부족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대학 교재가 아니라 대중서라면 대중들의 이해가 되어야 하는 것이 그 책의 책임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저자는 문화경제학 수업이 준 긍정적인 면을 "전통 경제학자의 연구 범위를 확장하여 경제학자도 문화의 역할에 관심을 갖게 했다는 점"이라 말한다.
아직도 나는 미궁을 헤매고 있다. 다른 챕터를 논하기엔 너무나 길다. 그래도 이 책을 통하여 여러 책을 찾아보았고 많은 자료를 검색하였다. 대학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내 생각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조금 쉬었다가 다시 읽어야겠다.
덧_
정치경제학이라는 용어는 <정치경제학 사전>(이론과 실천, 1986)에서 찾아 보았다. 이 책을 몇 년만에 다시 펼쳤는지 기억도 없다.
정치경제학은 인간의 사회적 생산관계, 즉 경제관계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과학이며, 인류사회의 각 발전단계에 있어서 물질적 재화의 생산 및 분배를 지배하는 법칙을 밝히는 것이다. 19세기 말 "정치경제학"이라는 용어는 경제학이라는 용어로 대체되었는데 이 새로운 학문은 수학적·통칙적 규칙에 근거하여 경제를 연구하며 생산과 소비의 구조적 관계를 등한시하였다.
덧_둘
이 책을 읽고 문화경제학을 표방한 우석훈의 <문화로 먹고살기>를 읽었다. 하지만 문화경제학에 관한 책이라고 하긴 어렵다.
덧붙임_
내가 (알라딘에) 쓴 글이 맘에 안들었는지 누군가 댓글을 달았다. 왜 링크를 하지 않았을까. 물론 내가 적은 이 책의 리뷰가 전체에 관한 글이 아니기에 어느 정도는 댓글 단 분의 말도 맞는 말이다. 아마도 내가 적은 글이 책의 전체 내용을 아우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의 내용을 몇 줄의 내용으로 적기에는 책의 내용이 녹녹치않다. 그래서 가장 관심있는 문화경제학에 대해 먼저 기술하고자 한 것이다.
댓글 :
학자라고 한 것은 케네디스쿨이 대학원(학부과정이 아닙니다) 중에서도 학자형 관리를 양성하는 코스이기 때문에 20세 전후의 일반 '학생'과는 다르게 표현한 것입니다.(알레시나 교수도 학생을 '학자'로 대한다는 표현이 나오므로 '중년 학자'의 표기는 '묘사'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2장(의료개혁)과 3장(애덤스미스와 종교), 5장(미국사회)이 '정치경제학'에 부합하며, 책에서 문화경제학(4장)은 '텃치'하는 수준입니다. 1장의 개방경제학이 '세계정치경제학'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독자님의 평점은 '문화경제학' 챕터에 한한 것이오니 다른 챕터를 독파하신 후 전체를 대상으로 다시 매겨 주세요. 어느 애독자 올림
ps1: 5장-3장-(4장)-2장-1장 순으로 읽으시면 난이도를 점차 올려갈 수 있습니다(1장이 가장 어렵습니다) (장별 연관성이 크게 없는 책입니다)
ps2: "공연예술에 국한 된 것이긴 하지만 1966년부터 논의가 되어왔고 1970년대에는 문화경제학회가 만들어졌는데 2009년의 강좌에서 새로운 분야라 하는 것과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 경제학의 하부 분과로 이제껏 '문화경제학'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계량경제학, 공공경제학,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지적하신 '문화경제학'은 미시 및 거시경제학을 현실에 응용한 농업경제학, 발전경제학, 가정경제학 등의 분류와 유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s3: 경제학의 본 모습은 '정치경제학'이라는 흐름이 최근 경제학계에서 대두[회복]되고 있습니다('수리경제학'이 아니라).(초창기의 고전경제학은 정치경제학이라고 불렸습니다).
ps4: 자연과학만 '과학'이고 사회과학은 과학이 아니라는 견해에 찬성하기 어렵습니다.
ps5: 요즘은 인문과학이라는 말도 씁니다. 경제학을 철학으로서의 인문과학으로 돌려야 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ps6: 노벨경제학상이 노벨상이 아니라는 견해는 받아들이기가 힘듭니다. (노벨 자신이 생존했을 때 제정한 것만 노벨상이라는 개념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대화문 안에서는 노벨경제학상을 노벨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댓글 :
책에 '문화경제학 수업은 학부생을 대상으로...' 기재되어 있어 적어놓은 것입니다. 읽는 순서를 알려주신 것은 감사합니다. 그냥 챕터 순으로 읽었습니다. 제가 과학인가를 언급한 것은 사회과학이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경제학이 과학으로 인정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저의 생각만은 아닌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정치경제학이 대두되는 것은 고전경제학의 한계가 드러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글 감사합니다. 찬찬히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다른 챕터도 리뷰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