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은 읽을 때마다 우울하게 만든다. 1년 전에도 그랬고 더 오래전에도 그랬다.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1년 전 장정일에 대한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장정일은 언제나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그처럼 책을 다독하지도 못하며 또한 자유분방하지도 못하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생각의 자유로움을 책장 너머로 볼 수 있는 책이다." (시기, 질투, 부러움 그리고 아쉬움)
[읽을 책]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 장정일이라는 포스팅을 올린 것이 2010년 9월이다. 거의 8개월 만에 장정일을 손에 잡았다. 책을 구매하려 하였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다. 하지만 구매를 하여야 한다. 꼭 필요한 책은 아니지만 간간이 읽어보면 책 읽기와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장정일은 독서일기라는 틀에서 벗어나 변화를 시도하려고 한다. 나이가 들어 게으름도 있고 같은 패턴에 대한 부담감도 있을 것이다. 늘 변하는 것이니 애초의 약속(패턴이라고 해야 하나)을 꼭 지킬 필요는 없다. 형식이란 변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점에서 장정일의 변신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여지는 있다. 그야 장정일의 마음이지 독자인 나의 바람과는 무관하다.
소설이 아닌 장정일을 읽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한가지는 내가 모르는 책, 그의 말을 빌리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책을 존재하게 하도록 책을 소개받는 일이다. 또 한가지는 기왕에 내가 읽었던 책에 대한 그의 생각을 되새김하겠다는 것이다. 두 가지 중 무엇이 우선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 책에서도 몇 개의 존재하지 않던 책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만들었다.
장정일을 통해 알게된 몇 권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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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서광 이야기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이민정 옮김/범우사 |
역설적이지만 책 수집가가 책을 읽게 되면, 책을 모을 수 없다. 읽은 책만 서가에 꽂아 두기로 한다면, 서가 선반은 매년 겨우
한두 칸밖에 늘어나지 못한다. 책 수집가는 책의 본래의 기능인 읽기(독서)와 다른 방법으로 책을 소유한다. 어떻게 보면
읽기를 통한 책의 소유란 그야말로 거죽만의 것(실용적)일 수 있다. (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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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쏘시개 아멜리 노통브 지음, 함유선 옮김/열린책들 |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질문 가운데 무인도에 간다면 어떤 책을 가져갈 것입니까 라는 질문은 가장 짓궂은 것에 속한다.
아이들은 재미로 돌을 던지지만, 그걸 피해야 하는 개구리는 죽을 맛이다. 도서관을 통째로 옮겨 놓으면 왜 안 되느냔 말이다. 그
질문이 짓궂은 줄 알았던지 아멜리 노통브는 <불쏘시개>에서 당신이 추위에 떤다면 어떤 책을 먼저 태우겠느냐? 고
묻는다. 질문을 달리한다고 해서 광적인 애서가의 곤란함이 깨끗이 씻길 리는 없겠지만, 다행히도 <불쏘시개>는 우리를 또
다른 주제로 이끌어 간다. (128~1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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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꽃 와리스 디리 지음, 이다희 옮김/섬앤섬 |
남성의 성기를 잘라버리면, 우리나라는 살기 좋은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남자들이 진정하고 세상을 좀 더 조심스럽게 대하게
될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분비되던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이 없어지면 전쟁도, 죽음도, 도둑질도, 강간도 사라질 것이다. 남자들의
은밀한 부분을 잘라놓고, 피를 흘리다 죽든지 살든지 내버려두면 그제야 여성에게 어떤 짓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70쪽)
헌책방은 일반 서점에서 보지 못하는 책을 보게 하고, 손에 쥐게 한다. 자꾸 헌책방을 찾게 되는 까닭이다. (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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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의 탄생 오카다 데쓰 지음, 정순분 옮김/뿌리와이파리 |
일본 사람은 고기를 먹을 줄 몰랐다? 불교를 융성하고자 했던 덴무 천황은 살생 금지라는 불교 교의를 기반으로 살생 금지 및 고기
식용 금지령을 내렸다. 그게 675년이었으니, 그때부터 육식 해금이 선포된 1872년까지 일본인들은 근 1200년 동안이나
육식을 먹지 못했다. 그 동안 수 · 당에서 전해진 우유나 유제품마저 사라졌다. 물론 그 조치는 사육동물인 가축을 대상으로
했으므로 야생동물은 제외되었다. (130쪽)
<돈가스의 탄생>은 메이지 유신을 요리 유신이라는 시각에서 포착한 책이다. 이 책은 육식이 일본의 근대화에 끼친 영향을
평가하는 것과 함께, 서양의 육식 문화를 일본에 접합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개발했던 3대 양식인 돈가스, 카레라이스, 고로케의 탄생
비화를 추적한다. (133쪽)
기왕에 읽었던 책에 대한 내 생각과 장정일의 생각이 다른 점도 존재한다. 그보다는 현재와는 다르게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이 존재함을 일깨워 주는 점이 장정일을 비롯한 서평 관련 책을 읽는 이유다. 장정일이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아직도 유효한 이유는 그의 가진 다른 시각에 대한 부러움과 시기심 때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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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장정일 지음/마티 |
덧붙임_
마티, 2010년 9월 초판 2쇄